수천억 원을 호가하는 예술품 시장의 명과 암: 경매 기록 경신과 로스차일드 가문의 유산 전쟁

수천억 원을 호가하는 예술품 시장의 명과 암: 경매 기록 경신과 로스차일드 가문의 유산 전쟁

매년 예술품 경매 시즌이 돌아오면 전 세계 수집가들과 주요 기관들은 희귀한 걸작을 확보하기 위해 천문학적인 금액을 쏟아붇습니다. 이러한 고액 거래는 단순히 작품이 가진 문화적 중요성을 넘어, 부와 명예, 그리고 재테크 수단으로서 예술이 갖는 강력한 위상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최근 경매 시장의 동향과 그 이면에서 벌어지는 소유권 분쟁을 통해 예술품 시장의 현재를 들여다보았습니다.

천문학적 낙찰가, 그 정점에 선 걸작들

최근 집계된 경매 역대 최고가 순위를 살펴보면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살바토르 문디(Salvator Mundi)’가 4억 5,030만 달러(한화 약 6,000억 원)라는 압도적인 가격으로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습니다. 주목할 만한 점은 2025년 소더비 경매에서 구스타프 클림트의 1914년작 ‘엘리자베스 레데러의 초상’이 2억 3,640만 달러에 낙찰되며 역대 2위로 올라섰다는 것입니다.

그 뒤를 이어 앤디 워홀의 ‘샷 세이지 블루 마릴린’이 1억 9,500만 달러로 3위를 기록했으며, 파블로 피카소의 ‘알제의 여인들(버전 O)’과 아메데오 모딜리아니의 ‘누워있는 나부’ 시리즈가 최상위권에 포진해 있습니다. 특히 피카소는 상위 20위 안에 세 점이나 이름을 올리며 현대 미술 시장에서 여전한 지배력을 과시했습니다. 최근 경매 시장에서는 장 미셸 바스키아나 앤디 워홀 같은 현대 및 동시대 미술 작품의 거래가 활발해지는 추세인데, 이는 컬렉터들의 취향 변화를 반영합니다.

예술품은 왜 상상을 초월하는 가격에 거래되는가

도대체 왜 이런 천문학적인 가격이 형성되는 걸까요? 전문가들은 희소성, 작품의 출처(프로비넌스), 문화적 영향력, 그리고 작가의 명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분석합니다. 과거 유명한 컬렉션에 포함되었던 작품이나 역사적 중요성이 높은 작품에는 으레 ‘프리미엄’이 붙기 마련이며, 명성이 명성을 낳는 구조가 형성됩니다.

초고액 자산가들은 미술품을 단순한 열정의 대상을 넘어 장기적인 투자처이자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증명하는 상징물로 여깁니다. 클림트나 모네 같은 거장들의 작품이 수억 달러를 호가하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자산가들의 욕망과 투자가치가 맞물려 있기 때문입니다.

경매장 밖에서 벌어지는 은밀한, 그리고 치열한 전쟁

물론 모든 명작이 소더비나 크리스티, 필립스 같은 대형 경매장에서 요란한 헤드라인을 장식하며 팔리는 것은 아닙니다. 상당수의 걸작은 딜러나 중개인을 통해 개인 간 거래(Private Sale)로 조용히 주인을 찾아갑니다. 이는 높은 경매 수수료를 피하거나 거래 사실을 외부에 알리고 싶지 않은 소유주들의 이해관계 때문입니다.

하지만 막대한 가치를 지닌 컬렉션을 둘러싼 갈등이 법정 다툼으로 비화되며, 본의 아니게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경우도 있습니다. 최근 유럽 금융 명문가인 로스차일드 가문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례 없는 유산 분쟁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3대에 걸쳐 철저히 베일에 싸여 있던 가문의 은밀한 컬렉션이 법정 싸움의 중심에 섰습니다.

‘미니 루브르’를 둘러싼 고부(姑婦) 갈등

스위스 제네바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프레니 성(Château de Pregny)은 외부인의 출입이 철저히 통제된 곳입니다. 하지만 이곳은 루이 16세 시대의 가구와 고야, 렘브란트, 프라고나르, 엘 그레코 등 거장들의 작품이 가득해 방문객들로부터 “미니 루브르 박물관”이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습니다. 이 엄청난 보물을 두고 93세의 시어머니 나딘 드 로스차일드 남작부인과 며느리인 아리안 드 로스차일드 남작부인이 맞붙었습니다.

갈등의 핵심은 1997년 사망한 나딘의 남편, 에드몽 드 로스차일드가 남긴 유산입니다. 나딘은 남편이 남긴 가구와 그림 등 컬렉션의 상당 부분을 자신이 설립한 재단 박물관으로 옮겨 대중에게 공개하길 원하고 있습니다. 반면, 2021년 사망한 외아들 벤자민의 부인이자 현재 가문을 이끄는 아리안은 “컬렉션은 훼손되지 않고 성 안에 그대로 보존되어야 한다”며 완강히 맞서고 있습니다.

우아한 침묵 뒤에 숨겨진 진흙탕 싸움

법정 공방은 꽤나 감정적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며느리 아리안 측은 예순이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시어머니인 나딘이 측근들에게 휘둘려 판단력을 잃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심지어 과거 치매 논란이 있었던 로레알의 상속녀 릴리안 베탕쿠르 사건에 빗대기도 했습니다. 이에 대해 나딘은 영국 가디언지와의 인터뷰에서 “내 목소리만 들어도 알겠지만 난 누구에게 휘둘릴 사람이 아니다”라고 일축하며 불쾌감을 드러냈습니다.

나딘 드 로스차일드의 인생 역정 또한 이번 소송전을 더욱 드라마틱하게 만듭니다. 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나 10대 시절 푸조 자동차 공장에서 선루프를 조립하고 누드모델로 일했던 그녀는, 이후 배우로 활동하다 금융계 거물 에드몽을 만나 결혼했습니다. 첫 만남에서 에드몽이 그녀의 반지를 보고 “가짜 다이아몬드라 아쉽군”이라고 말하자, 결혼 후 모든 보석을 진짜로 바꿨다는 일화는 유명합니다.

케네디 가문, 오드리 헵번 등 당대 최고의 명사들과 교류하며 사교계를 주름잡았던 마지막 남작부인 나딘. 그녀는 아들 벤자민이 사망한 후 며느리와의 관계가 “회복 불가능”한 상태가 되었다고 토로했습니다. 예술품은 누군가에게는 최고의 투자처이지만, 누군가에게는 가족의 연을 끊게 만드는 비극의 씨앗이 되기도 합니다.